2012년 6월 26일 화요일

크로키(Croquis)란 무엇인가? 그 접근법은?


크로키(Croquis)란 무엇인가? 그 접근법은?

■ 사전적 의미: 회화 기법의 하나로 ‘밑그림’, ‘초안’, ‘스케치’의 뜻이 담겨 져 있다. 다시 말해 그리는 사람이 대상의 형태나 그 움직임을 ‘보이는 그대로’, ‘느낌이 온 그대로’ 연필이나 콘테, 펜, 붓 등을 사용하여 짧은 시간 안에 그리는 것으로 세부묘사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의 가장 중요 한 특징적인 요소, 성질, 그리고 그 모양(조형)의 윤곽과 흐름을 표현하 는 행위를 일컫는다.

■ 왜, 무엇을 위해 크로키를 하나요? (크로키의 효과와 의의)

▪ 주로 움직임이 있는 동체(인물, 동물)변화의 미적인 표정을 화면에 담 아 내고자하는 욕구 때문에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상의 아름다움 을 화면에 간략하게 표현해 내기 위해서입니다.(순간포착 ⇒정지화면화)

▪ 그래서 우리말로 ‘속사약화’(速寫略畵)라고 할 수 있는데 영어의 스케치 (Sketch)와 비슷하나 스케치는 좀 더 충실한 묘사와 표현을 하는데 반 해 크로키는 보다 간단하고 빠르게 그린 그림형식으로 구분이 됩니다.

▪ 크로키는 대상을 앞에 두고 작정하여 그리기도하지만, 때로는 어떤 구상 이나 영감이 문득 떠올랐을 경우 스케치 북이나 종이 등을 이용하여 그 인상, 형태(윤곽) 등을 잊어버리기 전에 재빨리 남기기 위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본 작품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그려보는 에스키스
(Esquisse)과정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 따라서 ‘누드 크로키’는 크로키 수련의 한 방법일 뿐이지 이외에도 차를 타고 여행 중에 또는 집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꼭 사람이 아니어도 어느 순간 그 대상의 영상/영감이 떠오르면 그때의 인상, 특징, 윤곽을 얼른 기록해 내기 위해 어디서든 그릴 수 있고 연습 할 수 있습니다.

■ 크로키 수련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연습 원칙과 실제 접근법)

▪ ‘크로키는 빨리 그리는 그림’이라는 일상 관념에 사로잡혀 대상 전체 윤곽의 흐름이나 특징을 포착해 내려는 노력이 없이 그저 관념적, 습관 적으로 빨리만 그려 내려는 연습 방법은 옳지 않습니다.

▪ 빨리 그리더라도 좋은 그림, 올바른 그림을 그려야함이 우선이므로 모델 이나 대상을 진지하게, 그러나 가급적 빨리(감성, 직관으로) 관찰, 파악 하고 소화해 내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지키려다 보면 크로키가 아닌 뎃생, 정밀묘사의 연습 방법에 머무르게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긴 수련 기간이 필요 할 수밖에 없고요. 또한 크로키와는 별개로 뎃생, 정밀묘사 연습을 병행하거나 아니면 일상생활 속에서 메모지처럼 작은 스케치북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그려대는 그리기의 생활 습 관화가 된다면 더욱 효과적이겠지요.

▪ 인물(누드)크로키의 숙달과 성숙을 위해서는 크로키만 고집하지 말고 신 체의 각 부분(눈, 코, 귀 입, 등 얼굴과 손발, 팔다리, 목, 어깨, 허리, 등)을 별도로 각각 관찰하고 정밀묘사 해보는 연습도 병행해 보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 결론적으로, 현재의 우리 모임과 같이 정해진 시간에 비용을 들여 모델을 초청해서 여럿이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 하에서는 ‘빨리 관찰’, ‘윤 곽의 흐름과 특징 포착’, ‘정해진 시간 내 표현’ 이라는 연습의 중점을 벗어나 다른 형식의 그림을 그리기는 곤란한 입장입니다.

■ 다른 분, 다른 동호회(인터넷)에서 제시한 연습 기법들......
▪ 사례1: 크로키는 ‘잘 그리겠다’, ‘멋 있게 그리겠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 로 빠르게 그려내는 것’이겠지요. 연습의 출발은 편하고 부담 없 는 연습장(비싸고 좋은 것 아닌)과 연필을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고 빨리 그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풍경, 인상, 물건의 특징들을 보는 그 때 그 순간의 감동으로 바 로 표현해 보는 겁니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된 경험입니까?
중요한 것은 잘 그리려는 것이 절대 아니고 순간적으로 머리와 가슴을 스치는 어떤 영감과 잔상의 특징을 그리는 분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뽑아내는 것이겠지요. 특징만 살리고 불필요한 부분 은 과감히 날려 버리는 것이지요.

▪ 사례2: 딱히 특정한 스킬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네요. 우선 대상의 특징 을 잘 잡아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고 잘 그리려고 지우고 다시 그리거나 선을 중첩해서 다시 그리기 보다는 연필을 댔다 하면 바로 과감하게 그려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로키 작업은 대상 을 순간적으로 관찰하여 포착된 느낌을 폭발하듯 빠른 선으로 간략화, 단순화 시킨 그림이므로 오히려 작가의 감성과 감동이 숨김없이 표현되는 유리점이 있어서 좋은 그림양식인 듯합니다.

▪ 사례3: 크로키는 짧은 시간 내에 특징을 잡아서 빠르게 그려 내는 작업입 니다. 그래서 꾸밈이 없는 가장 순수한 마음(감성)의 작품이지요. 모델비를 아끼면서 연습 할 수 있는 좋은 방법 하나를 가르쳐 드릴게요. 정확히 누드는 아니어도 연습은 충분히 , 아주 많이 될 수 있답니다.
TV를 볼 때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나 음악 프로그램의 댄서를 보면서 움 직이는 그 사람을 빠르게 그려내는 연습을 꾸준히 하신다면 3분 이내 인체 전체를 완전히 그려 낼 수 있을 겁니다.

▪ 사례4: 크로키는 보통 10초~ 5분 사이에 어떤 대상을 눈으로 확인한 후 빠르게 올바른 형태(윤곽)를 그려내고 가능하다면 일부 세부묘사까지도 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합니다. 가끔 미술대학에서 누드 크로키를 10초에 한 장씩, 자세를 바꾸어 가며 ‘큰 동세’위주로 정확한 형태력(윤곽 표현) 을 잡는 연습을 하지요. 이렇게 1시간하고 10분 쉬고 해서 하루에 300 장을 거뜬히 그리게 됩니다. 이런 연습을 하면 형태력 표현이 좋아지고
아울러 묘사력도 살아나면서 그림이 안정감을 띄게 됩니다. 분명 잘 그 렸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신다면 전체적인 동세나 형태가 틀리거나 불균형해서 그런 겁니다.

▪ 사례5: 사실 크로키 하는 딱 정 해진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 기가 그리기 편한 요령을 스스로 만들고 터득해서 그려주면 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크로키 접근법이 있는데 어느 한 가지에 묶 이지 말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단지, 빠르게 그려야 하는 크로키의 특성 상 ‘일단 틀리더라도 손을 빠 르게 움직이는’ 훈련이 우선이고 그러자면 ‘선을 중첩해서 그리지 말고
연필을 대면 그대로 길게 그어 나가야‘ 하겠지요.
그리고 인체를 머리, 팔, 다리, 몸통 등 부분으로 나누지 말고 ‘전체적으 로 한 덩어리’ 라고 생각하고 ‘큰 동작’부터 ‘빠르게 잡아내는’ 연습법을 추천 드립니다. 처음 크로키를 접하는 분들은 멈추어진 대상을 5분 내에 시간을 스스로 제한해서 그려 본 다음, 단계적으로 시간을 줄여 가며 연 습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꾸로 매우 빠른 속도로 크로키를 해 본 다음에 점점 더 시간을 늘려가는 방법도 괜찮습니다.


이현세 선생님의 글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 천천히 꾸준히 갑시다 !

스케치과 크로키


001-그림자연스럽게 그리기 라는 책에서  드로잉은 영어고 뎃셍은 불어고  스케치는 영어고 크로키는 불어라고 하더라구요 두개식 뜻은 같다하는데 스케치하고 크로키는 다른거 아닌가요?
빨리속사하는스케치가 크로키란느거 말이죠 암튼 이상하게 단어에 얽매이니깐  전과 다르게 잡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지식즐을 활용해도 혼선이 있어요)  그림관연용어의 개념을 물어도 될까요??

1 : 기본적으로 '스케치'(Sketch) 와 '크로키'(Croquis)는 같은 개념입니다. 책에 나온대로, 영어식 표현이냐 불어식 표현이냐의 차이 뿐입니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세부에 얽매이지 않고 첫 느낌에 의존해 커다란 톤을 표현하는 드로잉 행위를 지칭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스케치'는 작은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려내는 '소품사생'(小品寫生)/ '크로키'는 빠른 시간안에 대상을 단순화시켜 그려내는 '약화속사'(略畵速寫)의 뜻으로 나누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고로, '드로잉(Drawing/영)'과 '데생(Dessin/불)'도 같은 뜻입니다만, '데생'(뎃상,데상 등등;)의 경우는 '밑그림'이라는 일반적인 의미 의외에도 건축도면, 도안등의 뜻도 포함한다고 하네요. 우리말로는 '소묘'라고 하죠.

드로잉과 데생은 '어떤 대상을 '선'(Line)적인 느낌을 살려 간결하게 표현해내는 모든 행위를 지칭한다' 라고는 하지만, 그럼 '면'적인 느낌으로 그려낸 것은 아니냐, 그건 또 아니죠^^; 그냥 어떤 것이든 손으로 그려내는 모든 행위를 '드로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스케치'나 '크로키' 모두 커다란 '드로잉'의 범주안에 속한다고 보시면 되죠.

하지만 그림은 그림일 뿐이고, 그를 분류하는 단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난 지금부터 스케치를 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이건 스케치가 아니라 크로키잖아!'라고 딴지를 걸어온다고 해서(보통은 그렇게 지적할 인간도 없겠지만;) 그게 그림이 아닌건 아니니까요.^^;



002-1분안에 움직임만 잡아야하는 제스처드로잉이라고 하는걸 하는데 이건도무지 낙서만 나오네요
움직임만 체크하는것도 도움이 되나요?

음... 말이 '제스쳐 드로잉'이지, 그게 크로키죠. 그게 그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림은 '손'을 이용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는 겁니다. 어떤 대상의 형질이나 본질을 눈으로 '빠르게' 파악하는 훈련이 크로키죠.

먼저, '크로키'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잠시 '두뇌'에 관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이해가 쉬워집니다. 좀 길지만 차근차근 읽어보세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그리는 뇌가 아닌, '말하는 뇌'(좌뇌)가 활성화된 교육을 받고, 그런 방식의 의사소통을 강요받으면서 자라납니다. (아기가 처음 태어나면 엄마 아빠가 애한테 뭐부터 시키죠? '엄마,아빠'등의 '말'부터 시키죠? 말 배우기 전에 그림그리기부터 시키는 부모 보셨습니까? -_-)

그렇게 삶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에 대해 좌뇌가 절대적인 권력을 거머쥐게 되면서, 우뇌의 고유영역인 '그림그리기'마저 좌뇌가 처리해 버리려고 고집부리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눈은 이렇게 생겨야만 해, 입은 이렇게 생기지 않으면 안돼... 라는 모든 고정관념이 다 좌뇌적인 관념이죠.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고정관념적인 형상을 벗어나는 결과물을 출력해야되는 상황이 되면 무척이나 불편해 하면서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있던 관념대로만 그리려고 합니다.(그래서 각자의 '그림체'라는 것이 생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게다가 좌뇌는 무척이나 신중한 뇌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에도 아주 조심조심 그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마치 털을 그리는 것처럼 짧은 선을 여러번 살살 겹쳐쓴다던지하는 식이죠.

그런데
어떤 형상을 짧은 시간안에 재빨리 그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좌뇌는 엄청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그런 상황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전문가인 우뇌에게 그림그리는 역할을 넘겨버립니다. 이른바 'R-Mode'(우뇌모드)가 되는거죠.

좌뇌의 간섭을 일절받지 않고 일단 우뇌모드가 발동되기만 하면, 우뇌는 자신이 보고 파악한 모든 것을 점차 술술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아주 신나게요.  

하지만, 우뇌는 좌뇌(L-mode)에 비해 상당히 소심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좌뇌모드에서 우뇌모드로 전환하는 것 자체부터가 상당히 힘들죠. 마치 구석탱이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 소심하고 내성적인 낯가리는 어린아이를 잘 달래서 뭔가를 시켜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겁니다. 그런 아이를 잘 달래는 방법이 뭘까요?

일단, 그 애가 재미있어하고, 소질이 있는 부분을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면서 지속적으로 시키는거죠. 
그게 '크로키'인겁니다.

보통 '속사'(크로키)는 3~5분을 잡는게 일반적이지만, 만약 5초,10초,30초,1분 단위의 크로키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비로소 우뇌의 본 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의식적인 짧고 자신없는 선에서 자유로운 길고 시원시원한 선을 내뱉게되죠. 바로 이 상태를 'R-mode에 돌입했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뇌를 발동시키려면 생각할 틈이 없이 길고 시원시원한 선으로 재빨리 무엇인가를 그려가면 됩니다.  

미술학원에 가면, 선생님들이 등짝 때리면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깔짝깔짝댄다!!'
'틀려도 좋으니까 선을 시원시원하게 쓰란말야!'
'작게 그리지 말고 크게크게 그리는 버릇을 들여라'

그게 다 우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미술학원을 처음 들어가면 몇주, 몇달간 종이 가득 선긋는 연습을 시키는 이유이기도 하죠.

좀 다른 얘기지만 우리의 몸은 재미있는게, 원인과 결과, 결과와 원인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흔히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마치 개그맨들의 캐치프레이즈 같은 말을 종종 듣는데, 이 말은 실제로 의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을 때 뇌하수체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일종의 흥분제격인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웃게되는데, 이건 그냥 억지로 웃기만 해도 분비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심난할 때 크게 소리내어 웃기만 해도 기분이 나아지는 거랩니다. '웃음'자체가 일종의 '행복의 시동'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우뇌모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뇌를 발동걸기 위한 '시동'이 정신없는 크로키가 되는겁니다. 이 크로키가 버릇이 되면, 언제라도 선을 슥슥 몇 번 긋는 시늉만으로도 바로 '그림그리는 모드'로 돌입할 수 있습니다. '자, 준비됐지? 시작한다!'는 의미인거죠.

그리고 평상시에 그런 '시동걸기'가 습관이 되어 어느 궤도에 오르게 되면, '그림을 그린다'는 신호가 오기만해도 그 순간에 우뇌는 아주 자연스럽게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지긋하신 대가분들일수록 항상 크로키가 습관화 되어계신거죠.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맨 윗 그림이 다시 보이시죠?)

그렇게 '시동'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크로키가 작품이 되느냐, 낙서가 되느냐는 전혀 아무 의미나 상관이 없습니다. 경운기 시동걸 때 엄숙하고 심각하게 걸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처럼요.(^^;) 

가끔 크로키를 하다보면, 말 그대로 '작품'을 그리려고 애쓰는 친구들을 종종 봅니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고, 크로키가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건 분명합니다만, 근본적으로 기능적인 크로키는 우뇌를 언제건 써먹을 수 있도록 평상시에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정비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작품'도 나오고, 뿌듯한 미소도 지을 수 있는거죠.

그리고 그런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다보면, 비로소 '일획만획'(한 획에 만가지 의미를 담다)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죠.(전 상상도 안갑니다만..)

배워가며 서서히 길을 들이고있는 입장이라면, 형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거 과연 도움이 되는거 맞아?'라는 의문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003- 종이를 보지 않고 모델만을 보면서 그리는 윤곽선 드로잉이라는게 있는데요, 매번 기괴한선의 불규칙한나열만 나오는데 이거 효과가 있는건가요?
뭐랄까, 그리는 그림을 보지않고 모델을 보면서 그모델의 윤곽을 종이에 그리는 것인데 ...
도움이될까요?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믿으세요!'
무엇이건 손으로 '그린다'는 자체는 다 도움이 됩니다. 효과도 있구요. 단,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겨우 2~3개월 해보고 '안된다'고 체념해버리면, 정말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그림실력이 느는 것은 키가 크는 것과 같아서 절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윤곽선 드로잉의 목적은, '형태를 보는 눈'을 키움과 동시에, 앞서 말씀드렸듯 '우뇌모드의 활성화' 되겠습니다. 운전을 하기 위한 시동거는 연습이라는거죠.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를 나누어 잘 생각해보면,

1. 어떤 형체를 눈으로 본다
2. 눈으로 본 형체를 기억한다
3. 기억한 형체를 해체시킨다
4. 해체시킨 형체의 궤적을 따라 팔의 근육운동으로 변환시킨다
5. 운동을 통해 '또 다른 형체'를 만들어낸다
6. 원본 형체와 내가 만든 형체를 냉정하게 비교한다
7. 비교 후 다른 점을 같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부분의 형체를 본다
(1~7 반복) 

맨날 그리는 그림이지만, 이렇게 나눠놓고보니 뭔가 대단해보이죠? 대단한 거 맞습니다. 무엇인가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고도화된 행위입니다. 우리가 선을 하나 긋는 동안에도 두뇌는 저 복잡한 계산을 수도 없이 한다는거죠.
따라서 '모사가 가치가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것이죠.

새가 노래하고 돌고래가 대화하고 원숭이가 춤을 춘다지만, '그림 그리는 동물' 보셨습니까?
코끼리 코에 물감뭍힌 붓을 매어주면 '칠'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걸 '그림'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어떤 형상을 '아주 비슷하게' 그려낸다는 건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죠.

심지어 인간은, 어떤 '소리' 또는 '감상'을 색채나 선을 통해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표현된 형상들이 다른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겠지만, 수많은 사람을 자신의 생각에 '동감'시킨 칸딘스키나 마크로스코 같은 추상화의 대가들을 떠올려보세요. 그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얘기가 좀 다른데로 샜는데... 여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눈으로 보고 그림을 그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내가 그리고 있는 또 하나의 이미지'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위의 순서에서 보았듯이, 원본 이미지와 내가 만든 이미지를 '비교'할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이 '비교'과정이 심해지면, 계산과 수학적 비교의 전문가인 좌뇌가 또 슬그머니 끼어들게 됩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누가 '에이, 거기 틀렸어, 죠기 틀렸어'라고 조잘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거죠. 지는 그림도 못 그리는 주제에.

우뇌가 좀 대범하고 성질이 있으면 무시해버리면 되는데, 얘는 천상 그렇지가 못합니다.
아... 그런가? 틀렸나? 내가 볼 때는 맞는 것 같은데... 이상한가?? =ㅅ=;;
한~없이 스스로 질문을 반복하고, 결국은 의기소침해지게 됩니다. 의기소침해진 우뇌는 결국 연필을 좌뇌에게 나눠주고 조그맣게 말하죠.

"그럼... 같이 그려... ;ㅁ;..."

이래서야 우뇌모드는 저멀리 물건너 가버리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타협된 그림'이 나오면, 화가는 스스로 '소질이 없어'라고 단정해버리게 됩니다. 좌뇌가 봐도 마음에 안들고, 우뇌가 봐도 마음에 안드는 그림이 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요.

따라서, 윤곽선 드로잉이라는 건 아예 좌뇌가 끼어들 틈을 안주자는거죠. 크로키보다 더 잔인하게. 아예 좌뇌를 왕따시켜버리는 겁니다.

좌뇌가 불쌍하다구요? 전혀요. 우리는 그림만 그리면서 사는게 아니니까, 여전히 좌뇌가 주도권을 잡아야 할 일은 무지하게 많습니다. 초,중,고 시절 좌뇌 대표언어인 '국어, 영어, 수학'이 최고로 중요한 과목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좌뇌는 우리 삶 소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거기서 겨우 '그림그리는 영역'만 우뇌에게 찾아주자는 건데요.

물론, 오랜시간 그림을 그려왔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은 '우뇌모드'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는 우뇌모드 전환이 안돼서 그런게 아니라, 좌뇌의 냉철한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죠. 이른바 '협업'(協業)이라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협업모드'는 어디까지나 '우뇌'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보고 그릴 대상이 없을 때 좌뇌의 정보은행에서 비롯된 원근법, 해부학, 색채학, 재료학 등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그렇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그림속에 어떤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집어넣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에도 좌뇌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도권은 '우뇌'가 잡고 있어야 하지요.

질문자께서 '기괴한 선의 불규칙한 나열이 과연 도움이 될까'라고 의문을 가지시는 것은, 아직 우뇌가 충분히 자신을 가지고 활동할 만큼의 기회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입니다. 앞서 드렸던 말 기억하시죠?

'믿으세요.'

글씨는 다른데 보고도 줄줄 잘 쓰시죠? 질문 주실 때 워드는 자판을 바라보고 치셨나요?
글씨를  처음 배우실 때, 워드를 처음 배우실 때, '과연 내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이 것들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셨나요?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믿으셨기 때문에 일상처럼 가능해진 겁니다.

우리 몸은, 어떤 것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진 것에 대해 놀랄만큼의 적응력과 잠재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 스스로를 '믿는 것'에서 부터 솟아나오게 마련입니다.


독학이란것은 하는것보다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가 막힐때가 젤 어려워요...

맞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를 때가 제일 어렵죠.  

제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께요.

8년전인가.. 군대 제대하고 나서 친구의 꼬임에 빠져 생전 처음 스키장이라는 데를 가봤습니다. 스키라는 걸 처음 신어봤죠. 첫 느낌이 '야... 이거 걷기도 힘든데, 이걸 신고 어떻게 내려오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같이 갔던 친구가 스키 도사인데,(요즘은 보드탄다고 지X 입니다. -_-) 글쎄 이놈이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법' 하나 달랑 가르쳐주고는 저를 리프트로 끌고 가더군요.;;

딱 보니까 글쎄, 중급도 아닌 '고급'코스에 저를 끌고 올라가려는 겁니다 글쎄. 아직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놈을 데리고.
얼결에 리프트를 탔는데, 끝도 없이 올라가더군요.
리프트에서 내렸는데, 경사가 " / "  <- 이랬습니다. 눈앞이 깜깜했죠.

같이 올라간 친구 놈은 벌써 폴대로 뒷짐을 지고(-_-) 저 멀리 '즐기며' 내려가고 있고...
(저 까마득한 아래에서 '빨랑 내려와~와~와~'라고 소리칠 때는 '죽여버리겠어!'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ㅋㅋ)

제가 생각한 '시작'이란 건 이런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시작은 먼저 걸음마 -> 아동코스 -> 초급코스 -> 중급코스...
이런 거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최고급 코스 꼭대기에 서 있는거에요.
그런데 도로 물를 수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도망갈 데가 없더군요.

그야말로 수십번을 '구르면서' 내려왔습니다.
완전 만신창이가 되도록, 그러고 겨우겨우 몸을 가누면서 내려왔더니, 또 끌고 올라가는겁니다(!)
눈물나더군요. 또 구르고... 구르고... (눈사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웃긴게,
딱 세 번째 올라갔을 때였어요. 몇 번 넘어졌는 줄 아십니까?

다섯번이요, 다섯번.

처음에 진짜 수십번 넘어진 것에 비하면 완전 용됐죠. 그렇다고 제가 운동신경이 뛰어난 놈이냐, 그런 것도 아닌데, 딱 다섯번 넘어졌습니다.

그러고 중급코스에 갔어요. '스키는 재밌다!'라는 걸 느끼게 되더군요.
스키바닥에 닿는 눈의 감촉과 귓가를 스치는 바람, 흩날리는 눈가루..
초급에 갔더니 장난이었습니다. -_-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메뉴얼'을 원하는 것 같아요.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더 안전하고 편하고, 더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얌체같이 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한 번 뿐인 인생이기 때문에'라고 하지만, 그렇게 안전빵으로 겁내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올라갔더라면, 슬로프를 내려오면서 느꼈던 수많은 쾌감들을 느끼게 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겠죠. 한 번 뿐인 인생, 또 다른 재미있는 도전을 하기에도 너무 늦구요.

제가 처음 페인터 책을 쓸 때도 그랬고, 첫 잡지연재 계약을 했을 때도 그렇고, 기한내에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면 1000만원이라는 위약금을 물어야하는 창작지원작에 '귀신'이라는 타이틀하나 달랑 들고 무턱대고 응모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앞뒤 안 가리고 하겠다고 약속하고 나니 그 다음엔 뭐가 어찌됐건 '해야만' 하더군요. 뒤로 도망갈 구석이 없었어요. 고급코스의 슬로프처럼요.  

뭘 잘 알아서, 만화를 잘 만들어서, 무슨 노우하우가 있어서 '하겠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등 떠밀려서' 하게 된 일들이었어요.
약속은 약속이고,
일단 시작을 해버렸으니, 어떻게든 해야만 하니까 했던거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적어도, 제 스스로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배움의 기회가 되었던거죠.
게다가 덤으로 필생의 꿈이었던 제 이름의 올컬러 만화책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기회를 맞게 된 계기도 되었습니다.


"수영선수가 되려면 일단 뭐가 됐든 일단 물에는 들어가고 봐야되는거 아녀? 근데 요즘 애들은 땅바닥에서 수영법을 배우고 익힌 다음에 들어가려고 한단 말이지..."

2012년 6월 18일 월요일